공항 범죄 케이퍼 1화

활주로 아래 19번 벨트

목적지 없는 검은 가방

공항 지하 19번 벨트에 되돌아온 목적지 없는 가방이 고태식을 수상한 사고의 한복판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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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식은 기계가 내는 소리를 믿었다. 사람의 말은 야간수당처럼 사정에 따라 줄거나 붙었지만, 베어링이 갈리는 소리는 누구 앞에서도 똑같았다.

새벽 한 시, 국제선 지하 분류장의 모터음이 한꺼번에 낮아졌다. 19번 벨트가 정지 구간으로 들어가며 고무판들이 차례로 멎었다. 태식은 공구함을 닫고 손전등을 들었다. 마지막 수하물을 걷어 낸 뒤에도 센서 표시등 하나가 느리게 깜박였다.

“고 기사님, 저거 아까 간 거 아닙니까?”

야간분류원 박용철이 벨트 끝을 가리켰다. 모서리가 닳은 검은 가방 하나가 센서 앞에 멈춰 있었다. 손잡이에는 흰색 태그가 매달렸지만 목적지 칸에는 항공편 대신 번진 검은 줄만 있었다.

태식은 가방보다 먼저 벨트 아래에 귀를 기울였다. 롤러가 완전히 멎은 뒤에도 관성으로 도는 얇은 쇳소리. 고장은 아니었다. 그는 방금 전 같은 소리를 들으며 검은 가방을 우회 슈트로 보낸 기억을 더듬었다. 손잡이의 붉은 실밥도, 오른쪽 옆면의 눌린 자국도 같았다.

“손대지 마요.”

용철이 장갑 낀 손을 뻗다 멈췄다.

“오분류면 저쪽에 다시 얹으면 됩니다. 뒤에 밀린 게 한 트럭이에요.”

“오분류면 처음 들어온 기록이 있어야죠.”

태식은 통제반에 무전해 19번의 비상정지 상태를 유지해 달라고 했다. 동시에 노란 격리줄을 꺼내 가방 둘레에 쳤다. 모든 벨트를 세울 생각은 없었다. 18번으로 돌릴 수 있는 물량은 돌리고, 19번 투입구만 막으면 됐다. 용철은 입술을 깨물며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출발 임박 표시가 주황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천장 스피커에서 운영실장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태식 씨, 또 센서 타령이야? 화면에는 오류코드 없어. 현장 확인하고 정상 투입해.”

태식은 마이크를 누르지 않은 채 욕을 삼켰다. 지난달에도 롤러 떨림을 보고했다가 새 부품을 달라고 떼쓰는 기사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도 틀리면 야간조 전체가 그에게 지연 책임을 돌릴 터였다. 하지만 맞으면 더 나빴다. 누군가 멈춘 벨트에 가방을 다시 얹었다는 뜻이니까.

“19번만 정지합니다. 나머지는 18번으로 우회시켜 주세요. 이 가방은 개봉도 재투입도 안 하겠습니다.”

잠시 잡음만 흘렀다.

“지금 네 판단 하나로 비행기 세울 거야?”

“비행기는 안 세웁니다. 벨트 하나 세우고 우회합니다.”

태식은 대답하며 통과 이력을 불러 냈다. 같은 중량값이 스물세 분 간격으로 두 번 찍혀 있었다. 그런데 첫 기록과 연결돼야 할 탑승객 정보가 비어 있었다. 숫자를 본 용철의 얼굴에서 짜증이 조금 빠졌다.

그때 회색 카트가 통로 입구에서 멈췄다. 미화반장 로사 마르티네스가 걸레 자루를 세우고 격리줄을 바라봤다. 그녀의 뒤로 야간 미화원 셋이 몸을 굳힌 채 서 있었다.

“왜 우리 통로를 막았어요?”

운영실장이 무전으로 물었다.

“로사 반이 그 구역 지나갔지? 가방 본 사람 있어?”

질문의 모양만 갖춘 지목이었다. 로사는 한쪽 눈썹을 올리더니 목에 건 교대일지를 펼쳤다.

“우리 반은 한 시 사 분에 여기 지나갔어요. 카트는 통로 밖에 세웠고, 청소구역 안으로 들어온 가방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못 봤다는 거잖아.”

“아니요. 어디까지 갔고 어디를 안 갔는지 기록했다는 뜻입니다.”

로사의 한국어는 느렸지만 단어마다 모서리가 있었다. 태식은 그녀가 들고 있는 일지의 시각과 카트 옆 봉인띠를 사진에 함께 담았다. 그러자 로사가 물었다.

“왜 찍어요?”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로 찍는 게 아닙니다. 손대지 않았다는 기록부터 남기려고요.”

“그 말을 보고서 첫 줄에 써 줄 수 있어요?”

태식은 휴대 단말의 현장기록 첫 항목에 ‘미화반 통과 시각 및 카트 봉인 상태 확인’이라고 입력했다. 로사는 그 문장을 두 번 읽고서야 뒤에 선 사람들에게 카트를 벽 쪽으로 빼라고 말했다.

우회 작업이 시작되자 분류장은 갑자기 좁아졌다. 18번 벨트로 몰린 가방들이 고무판 위에서 서로 어깨를 쳤다. 용철은 태그를 읽어 슈트를 바꾸고, 로사 반은 작업선 밖으로 빠진 포장 끈을 치웠다. 태식은 검은 가방과 통제반 사이를 뛰며 시각을 적었다. 누가 영웅처럼 가방을 열어젖힐 틈은 없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밀린 짐을 보내면서도 이상한 짐 하나의 흔적을 지우지 않는 것이었다.

우회 슈트가 한 번 막혔다. 가방 세 개가 입구에서 비스듬히 겹치며 경고음이 울렸다. 운영실장은 기다렸다는 듯 무전으로 19번을 풀라고 했다.

“지금 풀면 이 가방이 들어온 시간을 영영 못 찾습니다.” 태식이 대답했다.

“그 시간 찾다가 승객 가방이 비행기 놓치면 네가 책임질 거야?”

태식은 대답 대신 18번 투입 속도를 낮췄다. 용철이 긴 막대를 들고 달려왔지만 태식은 먼저 전원을 확인한 뒤에만 걸린 끈을 빼게 했다. 로사는 미화원 둘을 우회 출구로 보내 쏟아지는 비닐과 포장끈을 걷었다. 신경질적인 경고음이 멈추고 가방들이 다시 한 개씩 흘렀다.

“이제 일곱 분입니다.” 용철이 전광판을 보고 말했다.

“일곱 분에서 막아.”

“말은 쉽죠.”

“어려우니까 야간수당 받잖아.”

“그 수당은 기사님이 다 받는 것처럼 말하시네.”

용철의 투덜거림에 로사가 웃었다. 태식도 입꼬리를 올렸지만 눈은 통과 이력에서 떼지 않았다. 검은 가방의 두 중량값 사이에는 다른 수하물들이 정상적으로 찍혀 있었다. 센서가 같은 값을 두 번 잘못 읽은 것이라면 바로 앞뒤 짐의 간격도 흔들려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 가방을 한 바퀴 돌아오게 했거나, 멈춰 있던 구간에 다시 넣었다.

태식은 그 추정을 메모장에 적었다가 ‘누군가’라는 말을 지웠다. 대신 ‘재투입 경로 미확인’이라고 바꿨다. 로사가 어깨 너머로 보았다.

“왜 지웠어요?”

“사람부터 쓰면 경로는 아무도 안 보니까요.”

“아까는 우리 사람부터 물었는데.”

“그래서 지금 고치는 겁니다.”

태식은 로사의 교대일지 시각 아래에 자기 정비 순찰 위치도 덧붙였다. 새벽 영 시 오십팔 분, 7번 모터. 그가 19번을 비운 시간 역시 기록에서 빠질 이유가 없었다. 적는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가방이 들어온 시간이 그 공백과 겹치면, 가장 먼저 의심받을 사람은 로사가 아니라 자신일 수도 있었다.

“당신 것도 쓰네요.” 로사가 말했다.

“내가 어디 있었는지 나도 증명해야죠.”

“그럼 이제 조금 믿을게요. 많이는 말고.”

“많이는 나도 부담스럽습니다.”

공항경찰 하지후가 도착했을 때 지연 표시는 일곱 분에서 더 늘지 않고 있었다. 그는 격리줄 밖에서 태식의 기록을 먼저 읽었다.

“미확인 수하물로 넘기겠습니다. 보안팀이 현장 안전부터 확인할 겁니다. 그전에는 열거나 옮기지 마세요.”

“투입 시각부터 찾아야 합니다.” 태식이 말했다. “정비시간에 19번은 멈춰 있었어요. 정상 투입구로 들어왔으면 제가 봤을 겁니다.”

지후가 가방을 보지 않고 태식을 봤다.

“봤을 거라는 말은 진술로 남기고, 실제 기록은 따로 보죠.”

“알아요.”

대답이 날카로워진 것은 태식도 알았다. 그는 기계 소리를 잘 듣는다는 자부심으로 십칠 년을 버텼다. 그런데 경찰의 한마디는 그의 귀도 증거가 아니라는 뜻처럼 들렸다. 로사가 옆에서 교대일지를 내밀었다.

“내 기억도 기록하고, 내 일지도 기록해요. 둘은 다른 거죠?”

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식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로사에게 적용한 기준을 자신에게만 면제해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보안팀의 현장 확인이 끝날 때까지 태식과 로사는 통제선 밖에서 기다렸다. 담당자가 이송해도 된다고 알린 뒤에야 운반함이 들어왔다. 가방은 열리지 않은 채 덮개 아래로 옮겨졌다. 지후가 봉인번호를 읽고, 로사가 시각을 확인하고, 태식이 멈춘 벨트의 상태를 복창했다. 세 사람의 목소리가 차례로 무전에 남았다.

가방이 떠난 뒤 태식은 19번이 다시 작동하지 않도록 정비 차단이 유지되는지 용철과 확인했다. 통제 담당자의 확인까지 받고서 벨트 아래로 몸을 낮췄다. 손전등 빛이 롤러와 이음매를 훑었다. 끊어진 끈도, 떨어진 태그 조각도 없었다. 대신 투입구 쪽 먼지 위에 카트 바퀴와 다른 짧은 눌림이 있었다. 그는 자를 대지 않고 위치만 표시했다. 지금 손을 대면 자기 확신을 확인하는 대신 누군가의 흔적을 망칠 수 있었다.

“뭐가 보여요?” 용철이 물었다.

“아직은 눌린 먼지.”

“범인이 민 흔적 같은 거요?”

“아직은 그냥 눌린 먼지라고.”

태식은 몸을 빼며 허리에 손을 댔다. 용철은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고 기사님 입에서 ‘모른다’는 말도 나오네요.”

“나도 가끔 정비됩니다.”

로사가 짧게 웃었다. 웃음이 지나가자 태식은 그녀의 교대일지 사본을 받아 현장기록에 붙였다. 로사는 종이를 놓지 않은 채 말했다.

“오늘 이 가방 때문에 내 사람들 출입증부터 가져가면, 당신 기록도 같이 보여 줄 겁니다.”

“그러세요. 내 기록이 그 일 하라고 있는 겁니다.”

새벽 근무가 끝나기 전, 세 사람은 보안창고 태그검사대 앞에서 다시 만났다. 투명봉투 속 검은 가방은 분류장의 소음에서 떼어 놓으니 평범해 보였다. 하지후는 아직 개봉 승인이 나지 않았다며 덮개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

태식은 유리 너머 태그를 한참 바라봤다. 흰 종이의 모서리가 이상하게 두꺼웠다. 습기를 먹은 것도, 접힌 것도 아니었다. 그는 손전등을 비스듬히 낮췄다. 빛이 접착면을 통과하자 겉바코드 아래에서 검은 막대 세 개가 어긋나게 떠올랐다.

“지후 씨.”

“뭡니까?”

태식은 유리에 손가락을 대지 않고 빛만 고정했다.

“태그가 한 장이 아닙니다.”

로사가 숨을 들이켰다. 접착면 아래, 떼어 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두 번째 바코드 조각이 마치 감긴 눈을 뜨듯 검은 선을 드러냈다.